불안한 놀이
An uneasy play
윤디자인 갤러리
릴레이 초대전
Shin Jae Ho
Solo Exihibition
2016. 5. 20 (Fri) — 5. 27 (Fri)
OPENING
윤디자인 빌딩 (엉뚱상상)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 9길 13 (서교동 윤디자인빌딩)
전시서문
현대인의 불안에 대한 역설적 접근
김보라 | 예술학․미술비평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가 강조했듯이 인간은 불안과 더불어 사는 존재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불안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실존적 근원이다. 본래적인 자신과 만나게 하는 것이 불안의 역할인 것이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불안은 항상 존재해 왔지만,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불안의 정도는 나날이 증폭되어 간다. 불안은 인간의 내밀한 감정이면서 사회생활 속에서 유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우리를 지배하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을 유발시키는 요인은 실로 다양할 것이다. 우선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한다. 이를테면 일자리, 주거, 건강, 노후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매체에서 연일 보도되는 ‘묻지마 폭행’이나 아동 학대, 각종 흉악 범죄에 관한 뉴스는 타인에 대한 불신과 함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신재호는 《불안한 놀이》연작으로 이처럼 불안정한 사회 속 현대인의 심리 현상에 주목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신재호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해온 그림 약 25점을 선보인다. 그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영화, 드라마 작화, 교육 분야에서 이미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온 30대 후반의 작가다. 필자와 작가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신재호의 작품은 수묵으로 그린 동물화였다. 학부시절 동물표현 수업 과제로 그린 작품으로, 세계미술대전에 출품해 대상을 받은 그림이기도 했다. 소(牛)과에 속하는 ‘누’라는 동물을 묘사한 수묵화였는데 학생답지 않은 완숙한 실력으로 먹의 느낌을 제대로 살린 그림이었다. 그 작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갖고 실로 오랜만에 작가를 만나 이번 전시에 출품될 그림들을 보았다. 우선 첫눈에 10여 년 전 그림과 최근작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동물을 그린다는 점은 일치했지만, 채색 작업으로 변화했고 전통 수묵기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를 모색하고 있었으며 사생(寫生)을 넘어서 기호와 상징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의 작품을 만난다. 제작 시기와 매체를 기준으로 나눠보자면 2009년부터 한동안 이어진 작업은 장지에 여러 차례 색을 올린 후 먹으로 드로잉한 것이고, 2016년 최근작은 제과제빵용 도구인 ‘짤주머니’를 활용하여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중간 과정에 해당하는 몇몇 작품이 존재한다. 물론 이 작업들은 모두 《불안한 놀이》라는 같은 주제로 묶이는 연작이며 동일한 동물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조형적 측면에서 볼 때, 이전 작업에서는 선(線)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다면 최근 작품에는 다종다양한 짤주머니를 통한 점(點) 혹은 선, 마티에르가 도입된다. 또한 이전 작업보다 전체적인 색조가 밝아졌으며 좀 더 장식적인 경향을 보여준다는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화면의 장식적 특징을 더하는데 사용되는 도구가 쿠키나 케이크를 꾸미는데 쓰이는 용구인 짤주머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불안한 놀이》라는, 일견 두 단어의 조합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주제에 천착하고 있을까? 그가 이 연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작가가 불안이라는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개인의 구체적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몇 해 전 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를 목격하면서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한동안 운전대를 잡기 힘들 정도였고, 생각 이전에 신체가 먼저 반응하는 강렬한 불안 상태를 경험했던 것이다. 이후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신재호의 그림이 작가 개인의 내면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인의 보편 심리인 불안의 여러 층위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회적 고립, 경쟁, 폭력과 억압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극적인 상황을 추구하면서 아슬아슬한 불안 자체를 즐기는 현대인의 모습까지 불안과 연관된 인간 심리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한다. 신재호의 그림에서 불안의 양상은 이처럼 다양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가장 크게는 작가가 인간의 심리를 다루면서도 동물 캐릭터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신재호는 인물 대신 개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를 일러스트레이션적 요소를 부각시킨 이미지로 제시한다.
신재호가 만들어낸 동물 캐릭터는 흔히 ‘세계에서 가장 작은 개’라고 얘기되는 치와와를 변형하여 의인화한 것이다. 커다란 눈망울과 빈약한 체구를 지닌 치와와는 다름 아닌 나약한 인간의 표상이다. 예를 들어 <빨래하기 좋은 날>(2016)이라는 작품을 보면, 까마귀가 날고 있는 화장실 공간에서 치와와는 수건걸이에 걸린 조그마한 옷걸이의 집게에 매달려 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치와와가 얼마나 가벼운지는 다른 쪽 집게에 집혀 있는 고무장갑 한 짝과 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치와와는 자주 화장실 안에 그려지는데, 이는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 밖에도 치와와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도시 뒷골목과 같은 일상 공간 안에 서 있으며, 때로는 비행기에서 추락하거나 낙하산을 타고 하강하는 아슬아슬한 장면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대개 치와와가 입은 상의에는 작가 자신의 캐릭터로 보이는 얼굴이 그려져 있고 작가의 별명인 ‘Jebs’가 쓰여 있다. 그런가하면 하의는 속옷차림이다. 게다가 거의 속옷 차림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종종 넥타이를 매거나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데 이와 같은 어색한 결합은 치와와가 아이도, 성인도 아닌 어중간한 과정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과연 어른은 완전히 성숙한 존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치와와 캐릭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표정한 인상과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이어폰은 음원이 될법한 무언가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콘센트나 배수구와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이어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귀마개에 가깝다. 치와와가 여럿 그려진 작품 몇 점에서도 각자는 서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치와와 캐릭터는 소통불능 상태에 놓여있는 단절된 개체인 것이다. 일찍이 20세기 초에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대도시인들의 정신적 생활 조건이 ‘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라고 논한 바 있는데, 치와와가 보여주는 무표정함은 바로 짐멜이 적시한 그 지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화면의 여백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숫자들은 모든 것이 수량적인 문제로 환원되고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한 것에만 가치를 두는 현대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역시 짐멜이 지적했던 대도시의 화폐 경제적 현실인 것이다. 한편, 연작이 계속 이어지면서 점차로 그 숫자가 커지므로 시간성을 반영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경쟁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구성을 보여주는 <독점>(2012)에서는 ‘ON AIR’라고 쓰여 있는 공간에 아홉 마리의 치와와가 그려져 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이어폰을 끼고 있으며 손들이 모두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묘사된 것은 가운데 서 있는 치와와가 긴 젓가락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콩으로 보이는 것을 막 집어든 순간이다. 한때 방송에 출연했던 신재호 자신의 경험이 엿보이는 이 그림은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면서도 평등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우울한 현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가하면 <그것을 들은 이상 너도 나랑 함께 가야해>(2009)에서는 지하철로 보이는 공간에 치와와 네 마리가 등장하고, 맨 왼쪽 치와와만 넥타이를 매고 있다. 그의 손에는 바로 옆에 선 치와와를 향해 겨누는 권총이 들려있다.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놓고 난 후 행여 그것이 언젠가 자기 약점이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일방적으로 관계를 강요하는 암묵적인 폭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개념과 결합된 ‘놀이’라는 단어 역시 신재호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작품은 <갇혀있는 자>(2010)라는 그림이다. 화면 속 치와와는 전시장을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통나무에 칼을 끼워 넣는 해적 룰렛 게임과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긴장감 속의 치와와는 분명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재호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순간순간이 선택의 연속인 삶 자체도 하나의 게임 혹은 아슬아슬한 놀이라고 본다. 체스에 사용되는 말이 그림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또한 마치 ‘놀이’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청소년들에 관한 뉴스를 거론하면서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를 즐기는 이들도 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서는 매일같이 세계 곳곳의 재난과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도 놀라움과 충격을 느끼는 건 아주 잠시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흘러가는 일상에 묻혀 쉽게 망각하거나 무감각해지기 일쑤인 상황, 이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현상 역시 ‘놀이’라는 단어와 연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불안한 놀이》 연작 속 치와와는 이렇게 작가의 분신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된다.
키르케고르는 불안의 모호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불안은 하나의 공감적인 반감(反感)이고 그리고 하나의 반감적인 공감이다.……이 사실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말투로도 완전히 확인된다. 즉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달콤한 불안, 불안스러운 달콤한 감정……야릇한 불안, 수줍은 불안…….”(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춘갑 옮김,『불안의 개념』, 다산글방, 2007, 80-81쪽).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불안은 스스로 겪어내야 하는 경험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안이라는 모호한 상황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을 의식한다. 불안의 모호성은 불안과 관계한 모든 현상에 공통된 것이다. 불안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모호하게 관계 맺는다. 다시 말해 불안의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동시에 그것에 이끌린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품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만 때때로 우리는 불안으로부터 지배당하기도 한다(아르네 그뤤 지음, 하선규 옮김,『불안과 함께 살아가기』, 도서출판 b, 2016, 101-102쪽 참조). 이와 같은 불안의 모호성에 대한 통찰과 불완전한 인간 군상에 대한 예리한 시각이 신재호의 작품 전체에 녹아있다. 현대인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심리현상을 불안이라고 진단하는 그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오히려 가볍게, 또 재기 넘치게 펼쳐내고 있다. 그의 작업은 불안이라는 어찌 보면 어두운 마음 상태를 밝고 장식적인 화면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 《불안한 놀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동시대적 회화를 고민하며 실험한 다채로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앞으로 이어질 신재호의 ‘진지한 유희’를 기대하면서 그의 작가적 행보에 진심어린 응원을 보낸다.
Profile
신재호 / Shin Jae Ho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Oriental Painting, Hongik University Graduate School